[이코노믹포스트=박재경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당선인과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가 그렇지 않아도 뜨거웠던 국가 간 법인세 인하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촉발됐던 법인세 인하 경쟁이 법인세 대폭 인하를 내세운 트럼프의 당선으로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디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21일(현시지간) 영국의 법인세율을 전임 보수당 내각이 수립한 계획에 따라 이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이날 영국산업연맹 콘퍼런스에서 “영국 정부는 조세체계를 통해 혁신적인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서 가장 낮은 법인세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혁신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현행 35%인 미국 법인세 최고세율을 15%로 낮춘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일본과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방의 주요국들 역시 앞 다퉈 법인세를 내렸었다.
메이 총리의 전임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현행 20%인 영국 법인세율을 2020년까지 점진적으로 17%까지 인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메이 총리는 이날 구체적으로 법인세율 인하 폭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캐머런 총리 때보다 더 큰 폭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 충격 이후 영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대거 유럽연합(EU)의 다른 국가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이 대폭 증대됐다. 그동안 런던은 아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중간적 위치와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인 EU로의 접근성, 강력한 법적 보호,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고학력 인재 풀 등의 이점을 앞세워 다국적 기업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을 하면서 기업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국과 EU 간 상품 및 노동력의 자유로운 왕래가 막히게 됐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영국관리자협회(BID)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분의 1 이상이 영국 밖으로 회사 이전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정부는 법인세 인하 등 기업인들을 붙잡아 놓으려는 노력들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메이 총리는 2020년까지 법인세를 20%에서 17%까지 점진적으로 내리기 한 전임 내각의 정책을 이행키로 결정했다. 만일 영국이 법인세율을 17%로 내리게 되면 이는 법인세 최고세율 기준으로는 주요 G20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메이 총리가 17% 이하로 법인세를 낮추는 것으로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메이 총리도 캐머런 내각의 법인세율 인하 계획을 승인한다고 말했을 뿐 특정 세율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현재 17%의 법인세율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터키와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있다. 유럽국가들 중에는 ‘조세 회피처’로 불리는 아일랜드가 12.5%의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과 아일랜드는 투자 유치를 위해 2000년 초반부터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지난 2000년 50%가 넘던 법인세율을 30%대로 낮추었다. 아일랜드는 같은 기간 25%대의 법인세율을 12.5%로 대폭 내렸다.
이탈리아는 2015년 말 현지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3.5%포인트 인하한 24%로 조정했다. 일본은 올해 법인세율을 2%포인트 삭감한 30%로 인하했다. 일본은 최근 몇 년 사이 법인세율을 무려 10%나 인하했다.
미국의 법인세율은 39%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2월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28%로 낮추는 방안을 의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신 기업 세금 공제혜택을 줄이는 단서 조건을 달았다.
트럼프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래 가장 대대적인 세금정책 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법인 최고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대폭 내리고 상속세는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미국기업이 해외보유 현금을 본국으로 가져 올 경우에는 10%의 일회성 세금만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미국인들을 소득 기준 세 계층으로 나눠 22만5000달러 이상을 버는 집단에 대해서는 33%의 세율, 7만5000달러에서 22만5000달러의 소득군에는 25%, 소득이 7만5000달러 미만인 저소득층에게는 12%의 세율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39.6%인 고소득층의 세율을 낮추겠다는 '부자감세' 공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