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포스트=양승진 논설위원] ‘견인불발’(堅忍不拔)이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가 고장 나거나 사고가 났을 때 견인(牽引)하려고 했더니 불발됐다는 말이 아니다. ‘굳게 참고 견디어 쉽게 뽑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굳세게 참고 견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날 중국의 한 작은 마을에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가난했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닥쳐 농작물이 거의 모두 말라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많은 이웃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이 농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농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마른 땅에 물을 주고 비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의 가족들은 그런 농부를 보고 걱정했지만 농부는 항상 웃으며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며 버텼다. 몇 달 후 마침내 비가 내렸고 농부의 땅은 다시 살아났다. 그의 인내와 끈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고 결국 그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실 해피앤딩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세상사가 모두 그렇지도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함경남도 신포의 해안 양식사업소를 현지 지도했다. 정확한 방문 날짜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신축 건물에 ‘견인불발’이라는 구호가 붙었다. 그동안 ‘우리식대로 살자’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는 말이 주된 구호였으나 여기에 ‘견인불발’이 추가된 셈이다. 우리식대로 사는 게 어렵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살아가는데도 어려우니 이젠 굳세게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옛날이야기를 북한식으로 조금 바꿔보면 이렇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닥쳐(고난의 행군), 많은 이웃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탈북),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김정은 연설) 까지는 그런대로 엇비슷하다. 몇 달 후 마침내 비가 내렸다는 대목부터는 맞지 않는다. 농부의 땅은 살아났고,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는 건 북한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조선중앙TV에서 매일 방영하는 김정은의 ‘위대한 령도’가 메기 양식장이나 민들레 학습장 또는 매봉산 구두공장, 방직공장, 양묘장에 가는 것으로 대변돼서는 ‘자력갱생’ ‘견인불발’을 아무리 갖다 붙여도 처음부터 틀려먹은 일이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주민과 같이 굶고 힘든 일을 같이 하느냐 하면 그도 아니다. 너무 살이 쪄 수해지역 제방 둑을 혼자 가다 넘어질까 거들어야 하고, 딸인 주애도 “보름달 같다”는 주민들 표현이 있고 보면 너무나 대비된다. 소위 백두혈통이 사는 집들에 ‘자력갱생’이나 ‘견인불발’이라는 구호가 붙었을지도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김정은이 방문한 신포 건설장에 ‘자력갱생’ ‘견인불발’ 옆으로 ‘지상락원’이라고 붙여놨으니 이건 그들의 현재를 의미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EP jed0815@economic.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믹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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