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스로 빛나던 스크린, 이념의 칠판이 되다

주장환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10/02 [09:26]

【칼럼】 스스로 빛나던 스크린, 이념의 칠판이 되다

주장환 논설위원 | 입력 : 2026/10/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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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포스트=주장환 논설위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착각한다. 상대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 같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느낀다. 사랑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착각이다. 그러나 여기에 ‘권력’이라는 이상한 마법이 더해지면 이야기의 결은 전혀 달라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라고 믿기 시작하며, 자신의 욕망마저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바람을 피울 때 경계선은 결코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저 사람은 내가 딴눈을 팔아도 나를 버리지 못할 거야”라는 작은 착각에서 시작해 “나 정도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를 거쳐, 마침내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로 선을 넘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에 합당한 구실을 붙여 희석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끊임없이 강화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의심하고 멈출 상황에서도, 권력을 쥔 자는 오직 자신의 매력과 우월함을 확인해 주는 신호만 골라 받아들인다. 그 순간 동등했던 관계는 단순한 선택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권력자의 몰락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은 정치권력, 사랑권력뿐 아니라 문화권력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영화 한 편은 때로 정치인의 연설이나 사랑의 속삭임 보다 훨씬 오래 기억될 때도 있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영웅과 악인의 위치를 손쉽게 바꿔놓기도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알리겠다는 선의로 시작했을 수 있다. 그러나 힘이 커질수록 자신의 작품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고, 비판의 목소리를 “시대착오적”이라며 밀어내기 시작하면 오만이 자리 잡는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내가 역사를 독점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있다”는 절대 믿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주역》의 건괘에는 “항용유회(亢龍有悔)”라는 경구가 나온다. 용이 너무 높이 올라가면 반드시 후회가 따른다는 뜻이다. 높이 오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더 올라갈 곳이 없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가려는 순간부터 내려오는 길이 시작된다는 경고다. 비판을 거부하고 자기확신에 도취된 문화권력은 정확히 이 ‘항용’의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 창작과 각색의 자유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영화적 상상인지 관객이 스스로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견제와 균형이 필수적이듯, 문화권력 역시 비평과 반론이라는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이야기만 옳고 반대편은 틀렸다”는 독선은 문화의 다양성과 진정성을 갉아먹는다. 관객의 눈과 귀를 가린 채 특정 이념만 주입하려 들던 가스라이팅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자신을 꾸짖어줄 비판마저 외면한 채 박수 소리에만 취해 있다면, 그 권력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진정한 문화의 힘은 관객을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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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포스트 주장환 논설주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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