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3/02/01 [06:38]

[칼럼]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 입력 : 2023/02/01 [06:38]

 

[이코노믹포스트=양승진 논설위원] 북한에서는 탈북해 남조선에 가면 국정원 지하실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피를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해 죽인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한 탈북민은 2000년 4월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이제 자유를 얻었다며 기뻐했으나 하나원으로 가는 도중 큰 충격을 받았다. 

호화로운 인천공항의 모습에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길모퉁이에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간판을 본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을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은 죽게 되는가 보다 하고 그때부터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기도를 수천 번이나 하면서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이라는 간판을 본 순간 북한에서 받은 교육이 맞구나 하고 확신이 들었다. 거꾸로 매달아 피를 빼서 팔고 고기는 따로 판다고 했으니 나머지 뼈다귀까지 파는가 보다 하고 짐작을 했다.  

남조선은 못살고 먹을 게 없으니까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을 버젓이 내놓고 파니 이건 북한에서 들었던 것보다 상상 이상의 생지옥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없었다. 

조사가 계속되는 동안 냉장고에 먹을 것을 꽉 채워도 ‘이놈들이 나를 살찌워서 잡아먹겠거니’ 하는 생각에 손 하나 대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오로지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기도뿐이었다.
모든 조사가 끝나고 담당관이 “나가서 뭐 하고 싶어요”하고 묻는데 “살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여기 오면 다 사는데 왜 죽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래 속으로 “너희들이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두고 보면 알겠지”하는 의심밖에 없었다. 

하나원에서 백화점 견학을 갔는데 거기서도 그 의심병을 지울 수 없었다. 가격표를 보니 너무나 비싸 우리가 온다고 하니까 이렇게 높였구나 했다. 아마도 가고 나면 가격을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 

북한에서 장사를 하면 먼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게 일반화돼 남한 백화점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으니까 담당관이 뭐 하나 사라며 떼밀어 갔더니 신발을 파는 곳이었다. 할 수 없이 보고 있으니 눈길 가는 건 색깔과 모양이 흡사 군인 단화를 닮은 것만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보고 자란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걸 마음에 들어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젠가 나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하나원을 퇴소하는 날 아파트까지 받고 신분증을 손에 쥐는 순간 이제 죽지 않고 살겠구나 하는 감격에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 만세”를 3번이나 불렀다. 그래 담당관이 왜 그러냐고 묻기에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유를 주니 감격스러워서 그랬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과정이 당연한 거였지만 죽을 것이란 생각에 온몸이 마비될 지경이었으나 한순간에 그것이 해소되니 나름 표현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제 남한에 온 지 20년이 지나 제법 자리도 잡았다. 지금은 옛날이야기지만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간판을 보면 웃음만 나온다고 했다. 요즘에도 그러냐고 물으니 “지금은 맛있기만 해요” 했다. SW

ysj@economicpost.co.kr            

이코노믹포스트 양승진 북한전문 기자입니다. 한발 앞선 고급정보의 북한 소식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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