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칼럼]잭웰치

이코노믹포스트 | 기사입력 2016/07/02 [15:07]

[비즈칼럼]잭웰치

이코노믹포스트 | 입력 : 2016/07/02 [15:07]

 

▲ [잭 웰치]

 


[이코노믹포스트=주장환 칼럼니스트] 
잭 웰치는 전 세계 경영인들의 텍스트 적인 인물이다
. 그 이유는 GE라는 거대한 회사를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기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GE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878년 토마스 에디슨이 세운 Edison Electric Light Company가 모태다. 1892Edison General Electric CompanyThomson-Houston Electric Company가 합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이 왜 시사적인가 하면 에디슨 때문이다.

 

에디슨은 천재과학자임에 틀림이 없으나 위대한 경영자는 아니었다. 특히 축음기를 탄생시켜 놓고도 니퍼의 개로 잘 알려진 도우넛 판에 뒤처져 경영에 실패한 일은 에디슨의 아킬레스건이다. 에디슨은 자신이 만든 회사가 오늘날 세계최고의 회사로 살아 남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GE는 뉴욕증시의 DOW공업지수에 최초로 편입된 1899년 이래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시장가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혹자는 우리나라 상장기업 전체를 합쳐도 모자란다고 한다.

 

잭 웰치, 도대체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1935년 메사추세츠 피바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선조의 피를 이어받아 강건하고 모험심이 뛰어난 사내였다. 그는 메사추세츠를 오가는 기관차 차장이었다. 아일랜드계는 미국에 갓 건너왔을 때부터 설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먼저 이주해온 정통기독교인들의 압박을 많이 받았다.

 

케네디 집안도 아일랜드계였다. 아일랜드계는 설움의 눈물을 장미화단으로 가꿀 줄 아는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잭 웰치도 아버지로부터 이런 점을 교육받고 강인한 의지를 키워 나갔다. 집안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다. 철도근로자의 봉급이란 겨우 먹고 살만한 것이었다. 그는 야구나 풋볼같은 운동을 좋아해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잭 웰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잘라 요약한다면 명령 통제식 조직 구조의 혁파, 성과 제일주의의 경영, 인재 발굴 육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머뭇거리거나 좌절하는 걸 용서하지 않았다. 다소 공격적으로 보일정도 매사로 적극적이었는데 사람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꿰뚫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대부분 공격적인 사람들이 그렇듯이 맺고 끊음이 확실하였고 마음도 넓어 잘못된 일에는 두 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으며 자신이 신뢰하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배척했다.

 

잭 웰치는 명령에 죽고 사는 통제식 조직 구조가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으며 GE에서 그런 구조를 없애버렸다. 이런 단호한 태도는 바로 그의 어머니를 닮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일하는 직원들은 상사가 명령을 내리면 그저 로봇처럼 일한다. 이래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아일랜드 출신들은 대체로 강인하다. 아일랜드서 건너온 케네디 집안의 가훈이 “1등을 하라 2등이하는 패배다라는 말이었다. 잭 웰치도 그랬다. 그의 ‘1등 혹은 2등 전략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81CEO로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1.2등이 아닌 사업은 모두 때려치워라.” 직원들은 입방아를 찍었다. ”저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야 지금 최고 일류가 아닌가. 그런데 무얼 더 하라는건가? 아예 잡아 먹어라. 못 부려 먹어 환장했군.“

 

직원들의 반발과 불평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실 GE만한 기업이 어디 있는가? GE는 글로벌 기업으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업체들이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잭 웰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여기서 안주하고 있으면 다른 기업들이 치고 올라온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는 나약한 근성을 버리고 미래를 내다보라고 직원들에게 암시한 것이다. 그는 다가올 세대에 1등을 할 수 있는 고수익, 고성장 분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내부 단속을 강화했다. 성과 제일주의를 앞세워 직원이 올린 성과만큼 인사고과를 매겼다. 또 기업이 침체될 수 있는 가장 큰 함정인 계층구조를 간소화하고 통제 시스템의 관리와 절차를 줄였다. 반면 직원들에게 최대한 권한을 위임하는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것은 한계를 극복하게 해 주었으며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취를 가져다주었다.

 

1960년 일리노이 대학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GE에 입사한 그는 1981GE의 제8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냉혹한 감량 경영을 실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을 불러일으킨 품질 혁신 운동인 ‘6시그마 품질운동속도(Speed), 간결성(Simplicity), 자신감(Self-Confidence)으로 요약되는 '3S 리더십' .‘세계화 촉진전략’, ‘e기업등을 통해 GE를 하나하나 다져 나갔다.

 

잭 웰치는 메모하기를 좋아했다. 술집에서 술을 한잔하다가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이라든지 화장실에서 갑자기 착안한 것들은 그에게 좋은 비즈니스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의 메모는 독특하다. 그는 세 개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글자를 써넣었다. 그 안에는 핵심 산업, 서비스 산업, 하이테크 산업의 세 가지가 들어갔다. 그는 이 사업을 동력으로 하여 각종 부가사업을 창출해 나갔다

 

잭 웰치는 솔직하고 거짓이 없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이었다. 이 덕목은 CEO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실만을 말하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그에게 커다란 자산이 되었으며 직원들로부터 신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직장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하며 자유스럽게 의견을 교환하고 즐겼다. GE는 초대형 맘모스 기업이지만 내부에서는 구멍가게처럼 조직 구성원들의 의사소통과 의견교환이 언제든지 자유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잭 웰치는 골프장에서 캐디생활을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아이들에게 엄격하다. 대부분 성공한 명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온갖 궂은 경험을 다 시킨다. 이런 성향은 케네디가, 트루먼가 ,아이젠하워가 등 미국 대부분 명문집안에서 볼 수 있다.

 

게르만계로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지방 출신인 록펠러집안은 아들에게도 돈을 그저 주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록펠러가의 자녀들은 결코 아버지로부터 그저 용돈을 얻어 쓴 적이 없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려야 했으며 아버지 몰래 돈을 쓰고 싶으면 자신들이 벌어서 써야 했다. 남의 집 앞 청소하기, 차 닦기, 신문 배달 등을 하면서 돈도 벌고 세상도 배우는 수업을 가정에서부터 받은 셈이다.

 

잭 웰치의 아버지도 그런 면에선 자식교육 하나는 제대로 시킨 셈이다. 아버지는 잭 웰치가 성공한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라는 가르침을 은연중에 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런 말에 다름 아니었다. "만일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모른다면 넌 결코 멋지게 승리하는 방법 또한 알 수가 없을 거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넌 더 이상 경기를 할 자격이 없어."

 

실제 록펠러의 골프장 아르바이트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을 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 골프장은 성공한 기업가나 정치인등 저명인사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과 대화를 보고 배웠다,

 

잭 웰치는 연애도 재미있게 했다. 매사추세츠대학 다닐 때 그는 어느 봄날 여학생과 차안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는 캠퍼스 주차장에 폴크스바겐을 세워 두고 한창 사랑에 빠졌다. 이때 경찰이 다가와 김이 잔뜩 서려있는 유리창을 내리게 한다. 그 일로 그는 경찰에게 풍기문란죄로 잡혀 갔다. 경찰은 학교로 이 사실을 알렸고 화공학 주임교수인 해리 드리카머 박사가 허겁지겁 경찰서로 와서는 보증을 쓰고 데리고 나왔다. 훌륭한 경영자는 연애도 스릴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 셈인가?

잭 웰치의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하며 아이를 다그쳤다. “ 공부를 하지 않으면 넌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거야.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사람 말이다. 이 세상에 지름길이란 없단다. 자신을 속여서는 안돼! ”

 

잭 웰치는 나중에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경영신념들을 이렇게 간추려 말했다. “어머니는 나의 기본적인 경영 신념의 상당 부분들 - 이기기 위해 열심히 경쟁하는 것, 현실을 바로보는 것,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목표를 보다 높게 설정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임무를 확실히 완수하도록 가차없이 추궁하는 것 등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가 내게 불어넣은 통찰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떠한 상황이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선물은 자신감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추구해 왔고, 또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 주려 했던 것이다. 자신감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잭 웰치는 1인칭을 쓰는 걸 매우 싫어했다. 그는 자신이 이룬 거의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목표는 거대한 규모의 회사 안에 작은 회사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라면서 "꽃이 하늘을 향해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과 비료를 주는 것 처럼 인재들을 발굴하여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다.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결코 멋지게 승리하는 방법 또한 알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영자란 결코 높은 의자에 낮아서 지시나 하고 결재나 하는 사람이 아님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Speechok.com 블로그 참조]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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