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포스트=주장환 논설위원] 탄핵은 가혹한 형벌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죽음은 단 한순간의 고통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탄핵은 고통의 기간이 끝이 없다. 탄핵은 정적을 제거하는 상습적 기술이나 지금 이 나라에서는 실망의 탄식이며 분노의 표현이다. 서태후는 광서제의 이모다. 그러나 조카가 일으킨 여러 가지 개혁운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는 당신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광서제를 황제로 옹립한 것이 누구였던가. 황제로 만들어주고 뒷배를 든든히 봐주었더니 뒤통수를 오지게 쳤다. 그러나 광서제는 서태후에게 집중된 제5열(第五列)의 존재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이들은 내부에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처놓고 암약한다. 군부를 통제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위안스카이을 이용해 서태후와 보수파를 단칼에 날려 버리려 했던 젊은 광서제는 그러나 권력과 정치의 세계를 너무 몰랐다. 배신의 늪은 늘 믿음이란 어설픈 도덕성을 밀치고 들어온다. 위안스카이는 황제의 계획을 그대로 서태후에게 고해바쳤다. 기회를 노리던 서태후는 1898년 9월 광서제를 자금성의 영대에 유폐시키고, 변법자강을 주도하던 개혁파를 검거하는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음에 안드는 정적들을 일제히 탄핵하고 정치 일선에 재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황제는 허수아비가 되어 모진 북풍한설에 시달렸다. 탄핵 당한 자들은 울고 불고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세상이 뒤바뀌었다. 서태후는 나라의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이러는 사이 나라는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윤 대통령의 몰락은 이제 수순만 남았다. 탄핵이 눈앞에 다가왔다. 대통령은 국민 담화를 통해 “지난 2년 반 동안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며 야당을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자신의 계엄 선포에 대한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의미다. 그러나 보라. 군 장성들은 국회에 나와 울고불고 발뺌하기 바쁘고 경찰, 검찰까지 서로 먼저 살겠다고 용산을 압박하고 있다. 희극이자 비극이다. 이것이 인간 세태임을 윤 대통령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종말은 무섭다. 그러나 그것이 벽은 아니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대통령이 순간의 오판으로 계엄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 완벽한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모두 다 일생에 수십 번은 오판하고 실수한다. 그것이 죽을 죄는 아니다. 이 나라 정치판에는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뻔뻔하게 잘사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고 원한을 심어주며 비굴을 강요하는 책략가들 앞에서 당당하라.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라. 그러나 비열하지 말아야 한다. 2류가 되지 말아야 한다. 니체는 ‘끝맺음을 잘하는 기법’에 대해 이렇게 간곡하게 말한다. “최고의 대가로 인정받는 기준은 어떤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완벽한 결말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이 크든 작든 그리고 음악의 선율 혹은 어떤 사상 아니면 비극의 마지막이나 국가행동이 됐던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2류에 해당하는 자는 언제난 결말을 향해 부단하게 전진하나, 예를 들어 포로토피노의 산들이(제노바만이 자신의 멜로디를 끝내는 곳) 자부심과 평정을 유지하며 바다에 뛰어드는 형상으로 완벽하게 절벽을 이루는 것처럼 완벽한 결말에 도달하지 못한다.” SW jjh@economicpost.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믹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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