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

주장환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5/04/1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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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

주장환 논설위원 | 입력 : 2025/04/1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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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포스트=주장환 논설위원】 러시아 혁명의 주역인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공산주의자란 모름지기 법 위반과 거짓말, 속임수, 은폐를 예사로 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좌파는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기술자들’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체제전쟁 중이다. 극좌파는 중국이나 북한을 끌어들여 이 사회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땅에 난무하는 거짓말, 조작, 날조는 이제 예사다. 여기에 말려드는 순간, 바보가 된다.

본회퍼가 그의 저서 <저항과 복종>에서 제시한 멍청함의 이론(Theory of Supidity)에 따르면, ‘악보다 더 위험한 것이 멍청함이다. 멍청한 사람은 악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대중선동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사회에서 멍청함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독립적 사고와 비판적 태도와 시민적 저항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작금의 시국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만한 이론이다. 이와 동시에 떠오른 것이 레이건 대통령의 ‘선택의 시간(A Time for Choosing)’이란 명연설이다. 해설 없이 읽어도 대다수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이라면 깊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어서, 게으른 글쓰기라고 욕 먹을 각오로 이하에 원문 그대로 게재하니 이해 바란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합시다. 평화와 전쟁,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얻는, 그것도 즉각적으로 보장받는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항복하는 것입니다.

항복 이외의 그 어떤 방법을 택할지라도 그 길에 위험이 따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양보 속에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스스로를 선의로 포장하는 좌익들은 이런 유화정책 속에 숨어있는 망령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에게 ‘평화냐 전쟁이냐’가 아닌 ‘싸우느냐 항복하느냐’의 선택만을 남깁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양보하고, 물러서고, 후퇴한다면, 결국 우리는 최후통첩의 순간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겠습니까?

니키타 후루시초프는 자국민들에게 자신은 미국이 어떤 답을 해올지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이 냉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물러나고 있으며 그들이 최후통첩을 보내게 되는 날이 오면 미국은 정신과 도덕과 경제력을 모두 잃고 자발적으로 항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후루시초프가 이렇게 믿는 이유는 그가 미국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만은 지키겠다’고, ‘죽는 것보다는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혹은 어느 언론인의 말을 빌자면, ‘당당하게 서서 죽느니 무릎을 꿇고 살아남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쟁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미국인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고 노예가 되면서 지켜낸 삶이 아름답고 그 평화가 달콤할 것이라 생각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만일 인생에서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면 이런 믿음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적 앞에서만 해당되는 말입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파라오의 밑에서 계속 노예로서 살아가라고 말했어야 합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거부했어야 합니까? 콩코드 다리 위의 우리 애국자들은 총을 내려놓고 세계가 들었던 그 총성을 울리는 것을 거부했어야 합니까? 역사 속의 순교자들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나치의 진군을 막으려 목숨을 바친 명예로운 우리 전사자들의 죽음 역시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향한 길은 어디 있을까요? 그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에게 우리가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그들이 결코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다고 말할 용기를 가졌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인간의 운명은 물질적으로 계량할 수 없는 것이며, 거대한 힘이 세계를 흔들 때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며 짐승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한 우리에겐 좋든 싫든 의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운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후손을 위해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마지막 희망을 지킬 것입니다.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들을 수천 년의 암흑 속으로 밀어넣게 될 것입니다.“ EP

jjh@economicpost.co.kr

이코노믹포스트 주장환 논설주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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