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기관 투자자의 단독주택 매입을 제한하는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공화당의 팀 스콧과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이라는 극과 극의 정치인이 손을 잡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까지 더해진 이 풍경은 얼핏 ‘주거 정의’를 향한 위대한 진보처럼 보인다. 한국 역시 이재명 대통령이 비거주 1주택자와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으로 규정하고 초강력 대출 규제와 세제 압박을 가하며 같은 궤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의 이 뜨거운 규제 열풍이 과연 집값 안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질지는 대단히 의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규제는 ‘악당(Villain) 찾기’라는 공통된 문법을 공유한다. 미국은 주택 시장의 0.7%에 불과한 월스트리트 자본을 ‘부기맨(Boogiemen, 공포의 대상)’으로 소환했고, 한국은 다주택자를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특정 집단의 탐욕 탓으로 돌리는 정치는 대중의 분노를 달랠 순 있어도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듯, 대형 투자자의 매입을 막는다고 해서 집값이 내려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이는 실소유가 불가능한 저소득층에게 ‘단독주택 임대’라는 선택지를 뺏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의 대출 만기 연장을 불허하는 식의 ‘징벌적 규제’는 시장의 매물을 끌어내기보다 거래 자체를 실종시키는 ‘매물 잠김’ 현상을 심화시킨다. 정부가 퇴로 없는 압박을 가할수록, 시장은 얼어붙고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만 끊어질 뿐이다. 바람직한 부동산 정책의 방향은 명확하다. 첫째, ‘공급의 정상화’가 규제보다 앞서야 한다. 미국 법안에 포함된 규제 완화와 건설 절차 간소화 조항은 고무적이다. 한국 역시 규제로 수요를 억누르기보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혁파를 통해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에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규제는 정교하고 일관적이어야 한다. 다주택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감정적 접근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파괴한다. 임대 주택 공급자로서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투기적 가수요는 세제로 정밀 타격하되 건전한 임대 사업은 장려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셋째, 정치가 시장의 기능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투기 제로'라는 구호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 거래와 투자를 완전히 거세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위험하다. 정부의 역할은 심판이지, 선수들의 발을 묶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은 민생의 핵심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누구를 벌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이 지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분노에 기댄 규제는 잠깐의 지지율을 가져다줄지 모르나, 그 대가는 주거 불안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미국 중산층에게 '맘 앤 팝(Mom-and-Pop)' 부동산 투자는 일종의 노후 연금이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 사둔 한두 채의 집에서 나오는 월세로 은퇴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대형 투자자를 겨냥한 규제가 자칫 이들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의 재산권이나 은퇴 설계에 영향을 줄 경우, 정치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된다. EP webmaster@economicpost.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믹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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