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이코노믹포스트 | 기사입력 2010/04/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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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이코노믹포스트 | 입력 : 2010/04/07 [10:25]

지주회사인 LG를 중심으로 LG화학, LG전자 등을 주요 계열사로 둔 기업 집단이다. LG그룹은 1947년 1월 세워진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으로부터 시작됐다. 창업자는 고 구인회 회장. 구 회장은 사돈이자 진주의 만석꾼 거부였던 허만정 씨와 동업을 시작했다. 허만정 씨가 창업 자금을 대고 그의 아들 허준구(GS그룹 허창수 회장의 부친) 씨가 영업이사로 참여하면서 락희화학공업이 출범했다. 이때부터 구씨와 허씨 두 가문은 1947년 창업 이래 LG그룹이 분리되던 2005년 1월까지 57년간 분쟁 없이 동업관계를 이끌어왔다.

락희화학공업은 당시 ‘동동구리무’라고 불렸던 화장품 럭키크림을 생산했으며, 서울 창신동에 최초의 화장품연구실을 설치했다. 1951년 1월 조선알마이트공업사를 인수했다. 1952년 4월 동양전기화학공업사를 세웠다. 같은 해 8월 락희화학은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일회용품인 빗과 비누갑을 ‘오리엔탈’ 상표로 생산했다. 1953년 LG상사의 전신인 락희산업을 세웠다. 이듬해 10월 락희화학공업은 크림 타입의 럭키치약을 개발했다. 1956년 4월 락희산업이 반도상사(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58년 10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세웠다. 금성사는 1959년 11월 국내 최초로 ‘진공관 5구 라디오’를 만들었고 이듬해 3월에는 선풍기, 1961년 7월에는 전화기를 각각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1960년 4월 락희유지공업을 세워 화장비누 및 세탁비누 생산을 개시했다. 1962년 5월 LG전선(현 LS전선)의 전신인 한국케이블공업(주)을, 8월에는 락희비니루공업(주)을 각각 창립했다.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전화교환기를 생산했다. 1964년 5월 국제신보(주)를 인수했다. 1965년 4월 금성사가 국산 냉장고 1호를 생산했다. 1966년 1월 락희화학과 락희비니루공업이 합병하고 상호를 (주)락희화학공업사로 변경했으며, 이때 회장제도를 도입하여 구인회 창업주가 회장에, 공동창업주인 허만정의 아들 허준구가 부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4월 락희유지공업은 ‘럭키’ 상표로 합성세제 ‘하이타이’를 출시했다. 같은 해 8월 금성사는 국내 최초로 19인치 흑백TV를 만들었다. 9월에는 금성사가 한국케이블공업을 흡수합병했다. 1967년에는 국내 최초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를 세웠다. 락희화학공업은 1969년 5월 금성전자(주)를 설립하고, 10월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 해 12월 LG건설(현 GS건설)의 전신인 락희개발이 설립되었으며,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이 타계했다. 이듬해 구인회 회장의 장남 구자경 씨가 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LG그룹 구인회 창업주는 평소에 “대장간에서 호미 한 자루를 만들 때도 수없는 담금질로 단련한다. (…)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름없다.”며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 2세, 3세들에게 현장경험 중시의 경영수업을 20년 이상 쌓게 했다고 한다.

1974년 2월 락희화학공업사가 (주)럭키(현, LG화학)로 이름을 바꿨다. 1976년 2월 LG이노텍의 전신인 금성정밀공업을, 1978년 LG석유화학의 전신인 럭키석유화학을 각각 세웠다. 1977년 8월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19인치 컬러TV 양산을 개시했다. 1983년 1월 그룹 이름을 럭키에서 럭키금성으로 바꿨다. 1986년 4월 LG경제연구원의 전신인 럭키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듬해 1월 LG CNS의 전신인 (주)에스티엠을 세웠다.

1990년 3월 럭키금성의 스포츠팀 LG트윈스 야구단을 창단했다. 1995년 2월 (주)럭키가 LG화학으로 회사명을 변경했으며, 구본무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룹 이름도 LG로 변경했다. 1996년 7월 LG텔레콤을 설립했다. 1999년 9월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 Philips LCD를 설립했다.

2001년 4월 LG화학이 (주)LGCI를 존속법인으로 하고 (주)LG화학, (주)LG생활건강을 신설법인으로 하는 기업 분할을 단행했다. 2002년 8월 LG생명과학을 설립했다. 2003년 3월 화학부문의 지주회사인 LGCI와 전자부문의 지주회사인 LGEI가 합병을 실시하고 상호를 (주)LG로 변경한 뒤, LG그룹의 통합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11월 LG전선, LG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 등에 이어 12월에는 LG산전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되었다.

2004년 7월 (주)LG는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주)GS홀딩스를 세웠다. 이때 1947년 락희화학공업을 설립할 당시 공동창업주였던 허만정 씨의 허씨 가문이 GS홀딩스의 출범과 함께 LG그룹으로부터 LG칼텍스정유와 LG유통, LG홈쇼핑 등 15개 회사를 넘겨받아 GS그룹을 출범시켰다. GS그룹의 대표는 허씨 가문의 추대를 받은 허창수 씨가 선임됐다.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의 공동경영 형태로 운영됐던 LG그룹은 2005년 1월 LG그룹과 GS그룹으로 공식 분리됐다.

2007년 11월 LG솔라에너지를 신설법인으로 설립했다. 2009년 4월 LG하우시스가 LG화학에서 분할 설립되었다. 같은 해 7월 LG이노텍이 LG마이크론을 흡수합병했다. 2010년 3월 LG전자가 국내 최초로 3D TV를 해외에 수출했다. 2012년 LG화학이 세계 최고 전기차 배터리 기업에 선정되었다.

LG그룹의 지주회사는 (주)LG다. (주)LG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그 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지주회사로서, 주요 수입원은 자회사 등으로부터 받는 배당수익, LG브랜드의 권리를 소유하며 사용자로부터 수취하는 상표권 사용수익, 소유 건물의 임대를 통한 임대수익 등이다. LG의 주요 자회사로는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씨엔에스, LG실트론, 서브원, LG경영개발원, LG솔라에너지, LG스포츠 등이 있다.

LG그룹의 공익재단으로는 LG복지재단(보육시설 건립 지원, 청소년/노인/장애인 복지사업), LG상록재단(산림회복사업, 조류보호사업), LG연암문화재단(LG아트센터, LG상남도서관 운영), LG연암학원(천안연암학원, 연암공업대학 등 교육사업), LG상남언론재단(언론인 해외연수 지원, 언론인 어학교육과정 지원) 등이 있다.

2015년 3월 기준 LG그룹은 국내에 13만 1,000여 명, 해외에 9만 5,000여 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다.

2015년 3월 말 기준 LG그룹은 지주회사인 (주)LG, LG전자(주), (주)LG상사, (주)LG화학, (주)LG생활건강, (주)LG생명과학, LG디스플레이(주), (주)LG유플러스, LG이노텍(주), (주)지투알, (주)LG하우시스, (주)실리콘웍스 등 12개의 상장회사와 (주)LG씨엔에스, (주)LG스포츠, (주)LG경영개발원, (주)LG실트론, LG엠엠에이(주) 등 51개의 비상장회사를 포함하여 국내에 총 63개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다. 해외법인에는 289개사 있다.

 

2016년 6월 말 기준으로 LG의 최대주주는 LG그룹 구본무 회장이며, 보유 지분은 11.28%다. 구본무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보유 지분은 보통주 기준으로 48.44%다. 2016. 6. 30. (본문 내용 업데이트) [출처: 네이버 기관단체 사전  : 기업, 굿모닝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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